문화/라이프

눈과 코까지 사로잡는다… 그림자 조명과 숲 향기로 즐기는 '21세기형 풍류 음악' 체험

2025-09-19 17:37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대 도시의 한복판에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특별한 음악적 경험이 찾아온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한국 전통 성악의 정수인 '가곡(歌曲)'의 진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무대가 오는 25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전통공연창작마루 광무대에서 펼쳐진다. 전통예술의 맥을 잇는 젊은 예술가를 조명하는 '광무대 목요풍류' 시리즈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공연은, 가객 박희수의 '몰입'이라는 타이틀 아래 옛 선비와 사대부 계층이 향유했던 고고한 풍류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한다. 가곡은 단순히 노래 한 곡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바른 노래'라는 뜻의 '정가(正歌)'를 대표하는 장르로서, 시조에 선율을 얹어 내면의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던 지식인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가곡의 가장 큰 특징은 '느림의 미학'에 있다. 45자 내외의 짧은 시조 한 편을 무려 10여 분에 걸쳐 길게 늘여 부르는 이 노래는, 그 자체로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 깊은 성찰을 던진다. 이토록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단하고 안정된 복식 호흡이 필수적이며, 음을 섬세하게 떨고 꺾는 다채로운 장식음들은 단순한 기교를 넘어 깊고 장중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독보적인 예술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가곡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번 무대에서 가곡의 깊은 세계를 선보일 박희수 가객은 국가무형유산 가곡 이수자로서, '인간문화재' 김영기 명인에게 그 정수를 직접 사사 받은 차세대 명인이다. 중앙대학교와 동 교육대학원을 거쳐 현재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는 그녀는, 특히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금을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양금 병창'을 선보이는 독보적인 실력가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 '몰입'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관객이 오직 소리의 섬세한 결에만 집중하며 가곡의 본질에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연출을 시도한다. 전통 가곡 반주에서 리듬의 축을 담당하며 필수 요소로 여겨졌던 장구를 과감히 배제한 것이 그 첫 번째 시도다. 대신 거문고, 대금, 피리와 같은 선율 악기만으로 무대를 구성하여,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물 흐르듯 유려하게 이어지는 흐름을 극대화했다. 이는 한을 토해내듯 거친 질감을 표현하는 판소리와는 정반대로, 공기 새는 소리 없이 성대를 정교하게 붙여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는 가곡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여기에 관객의 몰입을 돕기 위한 감각적인 장치들이 더해진다. 연주자들의 실루엣을 무대 배경에 투사하는 그림자 조명은 시각적 집중도를 높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공연 시작 전 제공되는 숲 향이 담긴 시향지는 후각을 자극하여 마치 노래 가사가 묘사하는 풍경 한가운데로 들어선 듯한 공감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공연은 초여름의 푸른 정취를 노래하는 '버들은'을 시작으로 대금의 몽환적인 소리와 어우러져 꿈속의 그리움을 그리는 '꿈에', 사랑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을 담은 '사랑을', 그리고 황진이의 시조로 유명한 '청산리' 등 총 7개의 주옥같은 곡으로 채워진다. 특히 '북두칠성'이라는 곡에서는 박희수 가객이 노래 없이 직접 양금만을 연주하는 특별한 무대를 선보이며, 그녀의 다재다능한 예술가적 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줄 예정이다.